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턴 1세 (문단 편집) == 인품과 사상 == 황제 행세를 하면서 그는 샌프란시스코 내 기물들과 거리의 상태를 늘 점검하고 곤란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는 행보를 보였다. 게다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의외로 [[진보]]적이고 [[평등주의]]적인 생각을 보여줬는데, 19세기에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만국 종교와 [[국제연맹]], 즉 [[유엔|UN]] 같은 범세계적 정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. 특히 새로운 기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 [[19세기]]에 벌써 [[비행기]]의 연구를 위해 기금[* [[라이트 형제]]가 비행기를 발명한 해는 [[20세기|세기를 넘긴]] 1903년이었다.]을 조성했고 나아가 당시 [[아프리카]]에서만 사용하던 [[현수교]] 공법으로 샌프란시스코 만에 다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.[* 현수교 얘기는 즉위선언을 한 신문 기사에서 밝힌 내용이다. 즉 오래 전부터 이미 그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때 남아공에서도 살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때의 경험이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.] 훗날 그 자리에 지어진 현수교가 그 유명한 [[베이 브릿지]]다. 또한 본인은 [[유대인]]이었으나 모든 종교, 모든 인종을 공평하게 대우했으며, 모든 종교의 집회에 출석했다. 19세기부터 [[흑인]], [[아시아인]], [[아메리카 원주민]]과 같은 모든 인종에게 공평하게 대했기 때문에 비백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. 참고로 이 때는 아직 미국 남부에서 [[흑인]]들이 [[노예]]로 살고 있었고 샌프란시스코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는 [[남북전쟁]] 당시 자유주에 속했지만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마찬가지였다. 또 [[황인]][* 주로 "[[쿨리]]"라고 불렸던 중국 [[화교]]들]에 대한 차별도 심했으며[* 당시 미국에서 흑인은 노예, 하인취급이었다면 황인종은 사람이라기 보단 말하는 유인원 취급이었다.], 그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. 그러나 노턴 1세는 이런 시대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[[아시아인]]을 혐오하는 이들의 폭동이 발발하자, 홀로 폭도들을 가로막고 그들이 해산할 때까지 [[주기도문]]을 외었으며 괴롭힘을 당하는 중국인들을 앞장서서 돕기까지 했다. 그리고 나라의 안위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져 [[남북전쟁]]이 터졌을 때는 전쟁을 그만두라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 [[에이브러햄 링컨]]과 남부연맹 대통령 [[제퍼슨 데이비스]]를 소환했다. 물론 그 두 사람은 본인이 황제라 주장하는 이 양반의 소환 명령에 응하지는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